디제이 렉스(DJ Wreckx), 한국 힙합 씬에 있어 파이오니어 역할을 해온 분이시자 최초의 한국 디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척박한 환경에서 디제이 문화와 인식을 만들어 온 분이십니다. 그런 그가 최근 미국으로 떠났지만, 잠시 한국에 들어왔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많은 파티가 그를 여전히 찾고, 또 그는 여전히 플레이를 하고 있어서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와중에 잠깐 틈을 내주신 덕에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디제이 렉스와 함께 최근 근황부터 한국힙합의 과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블럭 : 계속 미국에 계셨는데, 혹시 미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지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간단하게 처음에 이야기해주세요.
렉스 : 처음에 인제, 하와이에 있는 빅아일랜드라는 섬에서 한 일 년 삼 개월 지냈고요. 지금은 LA로 움직여서 거기에서 지내고 있는데 빅아일랜드에도 비보이씬이 있어요. 로컬 비보이들이랑 같이 잼하고 그렇게 1년 3개월 정도 보내고 인제 LA로 가서 거기 로컬 친구들이랑 같이 활동하면서 지냈는데, 사실 미국으로 간 목적 중 하나가 언어 공부가 좀 크거든요. 그래서. 영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었죠 (웃음)
블럭 : 그러면 혹시 특별히 영어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렉스 : 제가 해외를 계속 다니면서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들하고 교류하면서 느낀 게 뭐가 있었냐면, 한국에서 알고 있는 씬하고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자주 경험했어요. 예를 들어서 저희가 해외에서 조금이라도 활동해 본 디제이들이 한 번 내지는 두 번, 몇 번 다녀온 거로 미국이나 뭐 그 외의 씬에 대해서 너무 쉽게 이야기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제가 단편적으로 2007년도에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그때 조금 충격이었던 것 중 하나가. 그 당시에 샌프란시스코 씬에서 아주 잘나갔던 디제이가 숏컷(Shortkut)하고, 게스트가 토니 터치(Tony Touch)였었어요. 그래서 파티를 놀러 갔었는데. 저까지… 생각하시기에 그 정도 라인업에 몇 명이나 놀러 왔을 거 같아요?
블럭 : 생각해보면… 다 채우지는 않았을까요?
렉스 : 그죠. 저도 그거 예상하고 갔었는데. 저까지 열한두 명이었나? 열두 명이었어요. 숏컷한테 물어봤어요. “이거 왜 이래?” “왜?” “너희가 플레이하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라고 물어봤더니 “I Don’t Care” 그냥 이러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원래 이런 거라고. (내가 알고 있던 것 하고는 다르구나). 처음 이 생각이 들었었던 게, 일본에 공연을 보러 가고 그러면서 그냥 한국의 많은 씬이 유투브를 통해 경험하게 되잖아요. 현장 씬이 아닌 일부 어떤 씬을 (유투브를 통해서 보고) 추측을 하고 ‘(이 씬은) 이럴 거야’(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제가 처음에 99년에 도쿄를 갔을 때, 그때 퓨쳐 샥(Future Shock). 98년도네요. MP가 퓨쳐 샥이랑 교류하기 전이었으니깐. 그때 저는 엄청 큰 그 일본 래퍼들이 다 공연하는 그런 큰 공연만 봤기 때문에 ‘퓨쳐 샥이면 적어도 한 몇천 명 규모의 공연장에서 할 거야’라고 (생각)해서 찾아간 시부야의 클럽이 MP보다 한 3배 정도밖에 안 컸어요. (거기에다가) 이제 디제이 프리모 플레이하거나 여러 뮤지션들이 왔을 때 다 MP의 한두 세배 정도밖에 안 큰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아 이거는 내가 생각했었던 거랑 다를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인제 그런 것들을 직접 경험해 봐야 되겠다’ (생각을) 하다가 딱 타이밍이 돼서 영어 공부도 하고 그 뮤지션들하고 좀 더 교류를 깊게 (하면서) 미국만 아니라 여러 나라 씬에 대해서 좀 보고.
블럭 : 오늘(스크래치 세션) 같은 경우에는 좀 더 코치해주는 시간이 있다고 들었어요. 혹시 어떤 것들을 해주시는지 궁금해요.
렉스 : 코치라기보단… 제가 디제잉 하면서 오늘도 그런 것들을 이야기 할 예정이에요. 우리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누가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한쪽으로 편파 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고. 단편적으로 제가 2007년도에 LA하고 샌프란시스코를 가서 물어봤어요. “LP플레이하고, CD플레이하고, MP3플레이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랬더니 미국 애들이 “그걸 왜 생각해야 해?” 라는 반문에 좀 놀랐어요. 그걸 왜 생각해야 돼… (웃음) 근데 한국에서는 아니잖아요. (블럭 : 그렇죠 CDJ랑 바이닐이랑…) 뭐가 진짜고 이건 가짜고, 이게 리얼이고…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봐야 하는지. 차라리 그거 이야기하기 전에 노래를 하나 더 들으라고 (웃음) 그런 이야기를 할 예정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제가 경험해보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플레잉 할 수 있었다. 아니면은 지금 미국 씬은 어떤지 제가 경험한 조금의 이야기들을 하겠죠.
블럭 : 미국 가시기 전에 호원대에서 강의하실 때는. 그때는 지금보다 더 훨씬 긴 호흡으로 수업하셨잖아요. 그때는 그러면 좀 더 기술적인 것도 가르쳐 주셨나요?
렉스 : 그때는 오히려 연주자들이기 때문에요. 학생들이 궁금해했었던 것들이 이거예요. “어떻게 DJ를 데리고 협연을 해야 합니까?” 그래서 그거에 대한 수업이었어요. DJ에 대한 이해.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DJ를) 그냥 악기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애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어 저희 앨범에 DJ가 필요한데요. DJ 좀 해주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면은 DJ 입장에서는 매우 많은 카테고리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베이스 연주자에게 “저희 곡이 있는데요. 여기에 베이스 좀 쳐주세요” 하면은 “장르가 어떻게 되죠. 어디에다 연주해야 되죠.” 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죠.
블럭 : 예전에 제가 에픽 하이(Epik High) DJ 투컷(Tukutz) 님을 인터뷰 했을 때 렉스님이 많은 것들을 알려 주신 스승 같은 분이라고 하시면서, DJ로서의 자세나 태도에 대해서 많이 배우셨다고 들었어요. 사실 투컷님 뿐만 아니라 사실 렉스님을 이야기하시(곤 하)는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은 렉스님 통해서 태도나 자세를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렉스 : 아유 잘못 배웠네. (모두 웃음) 저는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웃음) 근데 그때는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에 홈페이지에 많이 들어왔었던 질문이 ‘얼마 벌어요?’ 라는 질문이었어요. 근데 그때 제가 디제이를 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물론) 일정 부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답장을 하기로는) 그때는 표현이 서툴러서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때의 의미는 이런 거였어요. 어떤 내가 돈 때문에 이것을… 말이 너무 어렵다…(웃음) (그러니까) ‘꼭 돈 때문에만 이것을 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는 의미가 있었던 거 같아요. 사실 MP에서 공연하거나 그 이전부터 90년대 초부터 공연을 했을 때. 사실상 그걸 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아르바이트했거든요. 심지어 MP에서 플레잉 할 때도 저는 DJ DOC 포스터를 종로나 강남역 같은 데 붙이고 (돈을 벌고) 그걸로 일본 가서 LP사 오고 그랬었거든요. 나중에 DJ를 했을 때 내가 뭐를 플레이했었나 보다는 내가 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했었나가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래서 네가 디제이가 되는 과정을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죠). 단편적으로 저는 작업실에서 LP를 닦아내면은요. 그 LP를 샀었던 추억들이 주르륵 떠올라요. 근데 뭐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지금 친구들은 아닌 분들도 물론 계시지만 불법 다운로드받고, 그 노래 어디에서 다운 받았는지도 모르고, 그 노래 어느 폴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 거에 대해서 조심해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블럭 : 처음에는 이제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비보이로 시작하셔서 이제 독학도 하시고(모두 웃음)
렉스 : 죽는 줄 알았죠. 죽는 줄(웃음)
블럭 : 그땐 그러면 예전 영상들이나 그런 것을 보면서 하시는 건가요?
렉스 : 제 어렸을 때 AFKN, 2번 방송에서 그런 음악들이 나오기도 했었고. 친구들이 먼저 춤을 췄기 때문에요. 자연스럽게 흑인 음악들을 접하고. 제 초등학교 때에는 오히려 팝송이 훨씬 더 가요들이 유명했었거든요. TV에서 그래미(Grammy)나 이런 (시상식이나 음악 프로그램)들 다 보여주고 그랬거든요. 하다못해 코미디 간판 프로그램에 막 RUN-DMC 노래 같은 게 (흘러나왔고 - 시커먼스(정리자 주)) 아시잖아요. 너무 그런 게 자연스러웠고. (또 라디오에서도 RUN DMC가 나오고 그랬는데) 제 기억으로는 윤종신이 했었던 거 같아요. RUN DMC의 “Ooh, Whatcha Gonna Do” 했을 때 그분이 막 라디오 방송에서 “RUN DMC 앨범이 나왔는데요. 제목이 아~ 어떡하라고 인거 같아요.” 막 이 정도로 농담할 정도로 팝 음악이 굉장히 일반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CD나 레코드를 모으다가 그 안에 스크래치 사운드를 듣게 되었죠. 그래서 그거에 관심을 두고 (있다가). AFKN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거기서 디제이가 움직였을 때 그런 소리가 난다는 걸 알았고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92년도에 이태원에서 DMC US Championship 그걸 딱 구하게 되었어요.
블럭 : 지금은 사실 유투브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그런데, 그때는 그런 (정보나 LP같은) 걸 얻고 하는 데 있어서 돈이 너무 많이 들었을 거 같아요. 특히 지금은 사실 배틀판이 필요하다 하면은 직구를 하면 되지만. 그때는 어떻게 구하셨는지?
렉스 : 그때요? 이태원에… 아마 이건 거의 모를 거예요. 이태원에 비밀 레코드 샵이 하나 있었어요.
블럭 : 아 정말요?
렉스 : 그래서 그 창고 같은 방에 들어가면은. 할머니 혼자 이렇게 앉아 계시거든요. 거기에서 레코드를 사는 건데. 그때 샀었던 게 디제이 프리모가 거의 초기에 프로듀싱 했었던 ‘킹앤아이(Da King & I)’의 싱글이 있었는데 그게 10만 원이었었어요. 싱글 하나에. 그리고 그때 지금은 희귀해진 앨범들을 많이 사놓았었죠. 그리고 그 외에 앨범들은… 90년 중반에 한국 사람들이 일본 가기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저는 여동생이 일본에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일본에 가실 때 레코드 리스트를 적어 드리면 어머니가 레코드 샵에서… (사서 가져오시고 그랬죠)
블럭 : 배틀판을 직접 가져오시기도 하고 그러셨잖아요.
렉스 : 그때 우연히… 그 레코드 회사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수입업체였는데 연락이 왔죠. 디제이 렉스 닷컴으로 “우리가 이제 힙합레코드를 수입하려고 하는 데. 혹시 해볼 생각이 있냐?” 그래서 제가 “오 제가 해보겠습니다”하고 하게 되었죠. 근데 그 전에 이미 이제 소울스케이프(Soulscape)라던지 주석 그런 친구들의 앨범이 나왔었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가지고 서울에 있는 모든 레코드샵을 돌아다녔었어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향, 상아 그런데 다 거절당했어요. 우린 안 팔겠다. 그래서 결국은 일본에 막 가져가서 소울스케이프나 이런 앨범들을 만나는 DJ마다 다 줬었어요. 베스탁스(Vestax)에서 하는 큰 대회에 가서 DJ들 오면 미국 DJ나 유럽 애들한테 ‘이거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DJ다’하고 주었었죠. (웃음)
블럭 : 정말 발로…(웃음)
렉스 : 그때는 정말 저도 방법이 뭐 없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많이 판매되기 시작했죠.
블럭 : 지금까지 비보이분들이랑 계속 활동을 하시고 또 서포트를 하시는데. 계속 오랜 시간 활동을 하셨는데 그사이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잖아요. 그걸 렉스님이 느끼시기에 어떤 변화들이 어떠셨는지 궁금하거든요.
렉스 : 예전에는 그렇게 그 변화를… 예전에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었는데요. 지금은 큰 의미를 두게 되지 않게 된 거 같아요. 왜냐면 그걸 본인 스스로가 깨닫고, 깨달았다면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거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니깐 감정적으로 제가 변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90년 초, 중반 즈음 한국에 문라이트를 거쳐서 비보이들이 많아질 때.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라던지 Soul/Funk를 틀어주면 비보이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었어요.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같은 일렉트로닉 훵크 같은 거, 아이스티(Ice-T) 이런 것만 틀어주길 원했었거든요.
그랬다가 인제 시대가 바뀌고 한국 비보이들이 성장하면서 아이들이 해외에서 양질의 음악들을 경험하잖아요. 오 이 자식들이 갑자기 저를 가르치려고. (모두 웃음) 그러다가 이제 애들이 Respect이란 것들을 배워오면서 짧았지만 그런 것들이 없어지고.
그다음에 문제가 뭐였었냐면, 그다음 세대가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는 거예요. (그래서)’아 이거는 그 아이들이 좋건 싫건 간에 나한테 하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면 안 되겠다’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어떤 시대든 미국도 마찬가지고 일본도 마찬가지고 알고 좋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거고. 모르고 그냥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멋대로 가는 거니깐요. 그냥 그렇게 크게 신경을 안 쓰는… 답변이 이상하죠?
블럭 : (웃음) 약간 이해는 했어요. 직접 느끼거나 직접 자각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는 말씀이시죠.
렉스 : 네. 그래서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냥 ‘나 스스로가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블럭 : 과거에는 디스코그라피를 잠깐 보니깐 이현우 님도 있고 JK김동욱 님도 있고, 그 훨씬 이전에 삐삐롱 스타킹도 있고(렉스 : 그게 첫 세션이었어요. (웃음)) 많은 장르, 많은 아티스트 분들하고 같이 협업을 하셨는데 처음부터 약간 다른 장르와 이렇게 협업하는 거에 있어서 거부감이 없으셨나요?
렉스 : 저는 그냥 디제잉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고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거지, “내가 하는 게 옳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거든요. 아까 답변이 될 만한 것 중 하나가 이거에요. 아이들 보면 힙합을 알리고 싶다고 하는데. 굉장히 폐쇄적이에요. 이게 아이러니하잖아요. 힙합 디제잉을 알려주고 싶은데. 다 타 장르하고 교류하기 싫대요. 이해되세요? (웃음)
블럭 : MP 힙합 프로젝트 앨범도 그렇고 꾸준히 스크래치 트랙을 넣으셨잖아요. 그렇게 한 트랙씩 넣으시고 심지어 그게 항상 앨범의 첫 트랙이었잖아요. 저는 사실 지금 가방에도 있는데 테이프로 구매 했었어요. 근데 인제 그게 항상 첫 트랙이었고, 그게 어린 나이에 신기했어요. 그런 것들이 되게 좀 크게 와 닿았던 거 같아요. 지금은 사실 그런 아카펠라들을 활용하는 게 오히려 그때보다 줄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렉스 : 그때 그 한글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그거에요. 영어로 들으면 멋진 느낌이 나긴 하지만 이해는 안 되잖아요. 스크래치를 사람들한테 이해시키기 위한. 저한테는 가장 좋은 소스였던 거 같아요.
블럭 : 아까도 이야기하셨지만, 그때 아시아 안에서 교류가 많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때는 주석님도 DJ KRUSH와 교류하고 그러셨었는데. (지금에 비하면) 그때가 많은 교류가 있었던 거 같아요.
렉스 : 많은 교류라기보다는. 이제 교류로 따지면 지금이 훨씬 많은 거 같아요. 그때는 제한적이었으니깐 오히려 많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한국 힙합의 퀄리티도 굉장히 올라갔기 때문에 (더 많은 교류가 생겼죠). 그때 당시에도 의존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한국 힙합 뮤지션만으로도 좋은 퀄리티의 곡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므로 굳이 그거까지 생각하지 않지 않나. 그냥 저는 그렇게(생각해요)
블럭 : 사실 렉스님도 메타와 렉스 통해서 최근까지 계속하셨고. 그 얼마 전에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DJ KRUSH가 앨범을 내고 일본에서 투어를 하더라고요. 근데 그분 연세가 워낙(있으시거든요) 50이 넘으셨으니깐. 근데 되게 멋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렉스님이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해주시면 멋진 존경의 의미도 좀 더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있었거든요.
렉스 : 인제 시작하는 친구들은 (저를) 신인 DJ로 알고 있어서… (모두 웃음) ‘나이 든 아저씨가 디제잉을 하네!’ 그런…(웃음)
블럭 : 설마 그 정도로… (모두 웃음) 사실 DJ (들에) 관해서 꾸준히 논의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DJ분들에 대한 처우나 그런 것들에 대한 개선인데요. 아무래도 오래 활동을 하셨다 보니까 (렉스 님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하거든요.
렉스 : 근데 그 처우는 DJ들이 망쳤기 때문에… 그걸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깐 나는 아니야.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거는 결국은 그렇잖아요.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겠지만 불매 운동이 기업을 변화시켰잖아요. 그게 불만이면 그렇게 하던지. 근데 그거는 싫잖아요. 자기 일자리 잃을까 봐. 그러니깐 그거는 뭐 우리가 다 책임감을 남한테 전달하기 때문에 (그런 처우를 받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블럭 : 이해했어요. 그거는 굳이 이 씬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 전체가 해당하는 이야기라 (렉스 : 그렇죠)
블럭 : 제가 되게 인상 깊었던 거는. DJ로서의 렉스님도 있지만, 판을 만드셨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구해다 주신 경우도 있으시고. 한국에서 어쨌든 그런 DJ로서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걸 계속 보여 주셨던 거 같아서 (굉장히 존경하고 있어요). 그런 것도 있지만, 기획을 하시는 분으로써 앨범도 계속 기획을 하셨거든요. 혹시 앞으로도 좀 더 당장 가까운 시일이 아니라 좀 더 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렉스 : 제일 하고 싶은 건… 말씀하신 것처럼 후배들한테 제일 좀 당부하는 거는 견문을 넓히는 것에 대해서 큰 투자를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제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 중 하나가 제가 모르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가서 그 씬을 경험하려고 하는 분, 그러니깐 내가 세계적으로 활동하기를 원하는 데 그냥 한국에서 유투브로만 세계를 경험하니깐. 그래서 그냥 어떻게 보면 다 저를 좋아할 수 없지만, 디제이 렉스라는 사람이 가서 이 사람이 길을 만들어서 가능성이 보였다면 분명히 따라올 거라 생각을 하거든요.
그 길을 가면서 힘들 수도 있는 거고. 잘 될 수도 있는 건데. 그건 본인이 감당해야 할 일인 거니까요. 저도 처음 가는데 그냥 걷기만 했겠어요? 힘들어서 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그랬겠죠. 그냥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고. DJ라는 아티스트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건지에 대한 것도 한 번 내가 일을 해서 성공. 이런 게 아니라 그냥 DJ가 밴드랑 협업할 수 있는 거고, 스페셜 트랙을 만들 수도 있는 거고, 장르를 넘어설 수도 있는 거고, 이 장르의 역사를 공부할 수도 있는 거고, 여러 가지 길에 아주 조그마한 방향표를 제시하고 싶은 게 하나의 목표이고, 나이 들어서도 이게 직업이란 거에 갇힐 필요가 없다는 것들도 조금 더 말하고 싶어요.
블럭 : 혹시 또 앨범을 작업하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렉스 : 네. 노래는 굉장히 많이 만들어 놨어요. 굉장히 많이 만들어 놨는데. 뭐라고 할까. 그냥 내기가 싫은? 근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아 빨리 들려주고 싶다’가 아니라 그냥 ‘만들어만 놓고 싶다’란 생각이 (계속 들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냥 자기만족으로 끝나는(웃음) 만들어 놓고 ‘오 좋다…’ 외국 아카펠라 얹어서 들어보고 집에서 ‘그냥 좋다…’ 이러고 그냥 (웃음)
블럭 : 그러시군요. (웃음)
렉스 : 에픽하이한테 노래 주기 전까지는 만들고 그냥 지웠어요. (웃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만들고 (지워 버리고)근데 민준이(솔스켑) 앨범 나왔을 때 저한테 이야기했었던 게 “형. 만들면 꼭 저장하세요.”라고 저한테 이야기했었는데…(모두 웃음)
블럭 : 아까 저 잠깐 들어올 때 세라토(Serato)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남 쇼(NAMM Show)도 갔다 오셨는데 계속 새로운 장비나 이런 거에도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거에도 관심이 있으신 것인지?
렉스 : 저는 근데 사실 애들이 작업실에 오면 저한테 이야기 했었던 게 “도대체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컴맹에다가 그런 거에 관해 관심이 없어요. 그냥 저는 미국 가서도 2016년까지 맥북 블랙 옛날 거 아시죠? 2007년도에 산 거. 그걸 SL1이랑 같이 묶어서 썼어요. (모두 웃음) 그런 거에 이렇게 제가 무뎌요.
블럭 : 최근에 다녀오신 뭐 이런 계기가 있으신가요?
렉스 : 남 쇼요? 남 쇼는 그냥 친구들이 “너 남 쇼봐?” 그래서 “아니?” 그러니깐 “나 가는데?” “그래 알았어, 그러면 표 어떻게 사는데”해서 그냥 (무작정 가게 되었어요) (웃음) 근데 재미있더라고요.
블럭 : 그러면 컴맹이라고 하셨고 (모두 웃음) 어쨌든 계속 자신도 그렇고 업그레이드를 시도하시는 (모습이 느껴져요) 그런 시도를 하시는 동력 같은 게 있으신지 궁금하거든요.
렉스 : 동력은 제가 재미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재미. 재미가 저는 동력인 거 같아요.
블럭 : 이건 약간 추가로 드리는 질문인데요. 어쨌든 계속 플레이를 하시다 보면 듣는 음악도 바뀌고 쌓이고 막 이렇게 해야 하고 그러는데. 요즘에는 어떤 음악을 트시고 어떤 걸 들으시는지 궁금해요.
렉스 : 요즘은 그냥 딱 골든 에라를 많이 플레잉하고요. Soul/Funk는 예전부터 계속 플레잉했고. 요즘 그냥 딱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힙합들을 듣게 되는 거 같아요. 많이. 왜 그러냐면은 골든 에라라는 거나 옛날 너무 클래식에 저 자신이 갇혀 있다 보니깐 새로운 세대하고 작업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그 친구들한테 그냥 무작정 뭔가 나중에 피쳐링을 부탁할 때 ‘이건 내 스타일이니까 여기에다 네가 랩 해야 돼’ 이런 식은 너무 아저씨 같은 생각 같아서. 요즘 노래들을 계속 모니터하게 되는 데. 되게 좋더라고요. 와이지(YG)? 와이지 노래 좋아해요. 맨날 틀면은 똑같은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와서. “I Wanna Benz”. (모두 웃음)
블럭 :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제 렉스님 관해서 다시 이것저것 보다는 테드(TED)(에서 강연을) 하신걸 봤어요. 그때 이제 중요하게 말씀하셨던 게 DJ로써의 덕목 중 하나가 소통이라고 말씀을 하셨었거든요. 그때도 쿠마파크(Kumapark) 님이랑 그 자리에서 협연을 하시고 그런 그 음악을 틀 때도 그렇고 세션을 하실 때도 그렇고 그 순간을 소통 하는 게 (렉스님을 포함한 DJ들에게)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렉스 : 그렇죠. 대중을 봐야 하는데. 얼마 전에 비즈 마키(Biz Markie)가 올렸더라고요. “요즘 DJ들 한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DJ라는 것은 단순히 플레이가 아니라 너희가 현장을 보고 그 사람들과의 그 사람들을 즐기게 할 줄도 아는 거지. 너희가 현장을 보면서 너희가 (곡을) 선택하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곡들을 플레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쓴 글이 (SNS상에서) 한 번 돌더라고요. 굉장히 그거 중요하고 제일 기본적인 거잖아요.
근데 어떤 한국의 배틀 DJ나 어떤 장르적으로 그런 것들이 많이 들어 오면서 이것도 역시 견문의 문제였었던 거 같아요. 그게 폐쇄적으로 바뀌는 거죠. 저도 옛날에 그랬지만 DJ 하면 스크래치 못하면 DJ 아닌 거 같고. 일방적으로 내가 쇼를 보여주는 게 DJ의 큰 의미로만 이렇게 많이 보여지게 되었던 거 같은데요. 제일 중요한 건 선곡이지요. 현장 사람들과의 소통. 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오늘도 그 이야기를 할 텐데요. 예를 들어서 지금 뭐 어느 클럽이 유명한지 모르겠지만. 어떤 클럽에 사람들이 갔을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장르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제가 거기 가서 이건 내 스타일이야. 하고 막 온 사람들 고려 안 하고 그냥 무조건 제 스타일대로만 플레이한다면은 그건 좀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때로는 그게 중요하기도 해요. 내가 누구인지 각인시켜야 하므로 (이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하는)그 분배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일본에 갔을 때 제일 좋았었던 게. 일본 DJ들이 제일 좋고, 또 일본 DJ들이 견문이 참 넓다고 생각했던 점이 그런 것들을 클럽에서 소화했었다는 것. 새로운 것과 예전 것들을 잘 믹스해서 사람들이 거리감이나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게끔 (플레이를 하더라고요). 미국에서 지금 클럽을 경험해도 미국도 다 그렇게 플레이되고요. 아닌 클럽도 있지만. 제가 경험했던 모든 클럽은 대부분 그런 플레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