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 SLS, 9.5점, 그리고 우승
2026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SLS(Street League Skateboarding) DTLA’는 전 세계 최정상 스케이터들이 모인 무대였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이 대회에 생애 처음으로 출전해 사상 최초의 한국인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재거 이튼 등 레전드들과의 마지막 라운드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강준이 선수는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그는 1, 2, 3번째 트릭에서 연달아 기술을 성공시키며 초반부터 안정적으로 순위권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두 번째 트릭에서 '스위치 270 백 립'을 성공시켰고, 이는 SLS 무대에서도 쉽게 나오지 않는 9.5점이라는 고득점으로 이어졌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당시를 돌아보며 "잼 세션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였어요. 초반에 3개를 연속으로 성공하면서 점수를 확보했는데, 그때 긴장이 확 풀렸어요. 그 이후부터는 몸이 가볍게 움직이면서 완전히 흐름을 탄 느낌이었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우승의 쐐기를 박은 것은 마지막 트릭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트릭에서 '널리 270 보드슬라이드'를 성공하며 9.3점을 추가로 획득했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첫 라인이 9.5점이 나와서 너무 놀랐어요.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고, 굉장히 황홀한 순간이었어요"라고 밝히면서도, 마지막에 성공한 9.3점짜리 트릭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으로 꼽았습니다. 마지막 주자인 재거 이튼의 트릭이 진행될 때도 그는 차분함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솔직히 결과와 상관없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재거의 트릭을 볼 때도 크게 긴장하기보다는 편한 마음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우승까지 하게 돼서 더 놀랐어요"라고 말하며 첫 출전 무대에서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02
양산의 8살 소년
강준이 선수의 시작은 경남 양산이었습니다. 그는 8살 때 우연히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접했고, 9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보드 위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어릴 때부터 바퀴를 좋아해서 바퀴만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달려가서 만져보거나 꼭 올라타봐야 했다"며,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봤을 때도 바퀴가 달려 있고, 무엇보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종목이라는 점에 확 끌렸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하여 얻은 배트맨이 그려진 산타크루즈(Santa Cruz) 브랜드의 제품이 그의 생애 첫 보드였습니다. 양산 워터파크 스팟에서 이길현 강사를 만나며 체계적인 훈련을 시작한 그는 보드를 잡은 지 불과 4개월 만에 고난도 기술인 '베리얼 킥플립(Varial Kickflip)'을 성공시키며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당시 양산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당일치기 강습을 다녔는데, 새벽 4시 반에 집에 도착하는 일정을 1년 동안 버틴 끝에 아예 서울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대중들은 그를 '타고난 재능'이라 부르지만, 그 뒤에는 친구도 만나지 않고 하루 9~10시간씩 보드에만 집중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을 보고 그냥 재능이 타고났다고 말하는 걸 들을 땐 어렸을 때 얼마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녔는지 모르니까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제가 봐도 전 공부도 포기했고, 약간 스케이트보드에만 미쳐있는 것 같거든요. 뭐, 친구도 안 만나고 그냥 보드만 타요. 다른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제가 끈기 있는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스케이트보드 탈 때만큼은 좀 끈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날렵한 점프를 요구하는 스케이트보드 종목에서는 비교적 작은 체구의 선수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강준이 선수는 최근 3년간 키가 150cm 후반에서 180cm 초반까지 급성장했습니다. 신체 조건이 커지면서 성장통과 함께 밸런스를 잡는 데 약간의 어려움도 겪었으나, 그는 이를 오히려 높은 점프력이라는 장점으로 연결했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키가 크면 밸런스가 조금 무너질 수 있지만, 점프가 잘 돼서 저는 오히려 좋아요."라고 전하며 약점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을 자신만의 무기로 바꾼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03
2024 탬파암: 세계를 깨운 첫 번째 마일스톤
글로벌 무대에서 실력을 처음 증명한 시점은 2024년 탬파암(Tampa Am) 우승이었습니다. 1995년부터 미국 플로리다 탬파 스케이트파크(Skatepark of Tampa)에서 개최된 탬파암은 전 세계 최고의 아마추어 스케이터들이 프로 진입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아마추어 대회입니다.
당시 16세였던 강준이 선수는 한국인 최초로 이 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예선 1위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1, 2차 런에서 연달아 실패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마지막 런에서 뭘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마지막 트릭인 널리 270 힐플립(Nollie 270 Heelflip)을 성공해서 서사가 제대로 쓰였죠. 그 런은 제 인생 경기였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는 쟁쟁한 아마추어 강자들 사이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했고, 이는 전 세계 스케이트 씬의 이목을 사로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어요. 탬파암 전에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온 듣도 보도 못한 꼬맹이였지만, 지금은 '저런 애가 나온다고?'라며 사람들이 놀라더라고요"고 말했습니다. 탬파암을 통해 강준이 선수는 한국 스케이트보딩 역사를 새로 쓰는 동시에 글로벌 프로 무대로 직행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04
2025 X Games: 세계 무대 안착
탬파암 우승에 이어 2025년 X Games 오사카 대회 은메달은 그가 세계 최정상급 스케이터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결과였습니다.
1995년 미국에서 시작된 X Games는 액션 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오랜 역사와 압도적인 중계 규모를 자랑하는 대회입니다. 일반적인 국제 대회와 달리 참가 신청을 받지 않는 철저한 초청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직전 대회 메달리스트를 포함해 메이저 대회에서 검증된 자, 혹은 당해 씬에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남긴 제한된 인원의 스케이터에게만 출전권이 허락됩니다. 전 세계 스케이터들이 커리어 통산 한 번이라도 초청받는 것을 목표로 삼을 만큼 상징성이 큽니다.
성인 무대의 데뷔전 격이었던 이 대회에서 강준이 선수는 1차 시도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한 후 구성을 바꿨습니다. 당시 다소 아쉬운 판정에 대해 세계적인 스케이터 구스타보 히베이루(Gustavo Ribeiro)가 SNS에 ‘도대체 왜 그가 우승하지 못한 거야?’라는 댓글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초반 1차에 70점을 받았을 때는 판정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있었어요."라면서도, "근데 금방 마음을 다잡았어요. ‘내가 못 한 거니까, 심사 탓하지 말자.’ 그렇게 마인드 바꾸고 2차전부터 다시 제대로 시도했습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그동안 연습해 온 고난도 트릭인 '널리 360 노즈슬라이드 270 아웃(Nollie 360 Noseslide 270 Out)'을 시도해 한 번에 성공시켰습니다. 강준이 선수는 "3등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2등을 할 줄은 몰랐어요."라고 전했습니다. X Games 오사카 2025에서 세계 최정상급 스케이터들과 경쟁한 끝에 거둔 준우승이라는 성적은, 그가 더 이상 주니어 레벨의 유망주가 아닌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임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05
날개를 펼치다: 레드불 스케이터로의 합류
세계를 무대로 가파르게 성장하던 강준이 선수는 2025년, 레드불의 스케이터로 전격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레드불 애슬릿'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강준이 선수는 레드불과의 파트너십에 대해 "엘리트 중의 엘리트 선수와만 함께하는 브랜드니까, 종목이 달라도 해외에서 레드불 선수를 만나면 괜히 반갑다"며 소회를 밝혔습니다.
평소 패션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 그는 "그냥 선물로 받은 티셔츠를 입고, 모자도 레드불에서 받은 걸 쓴다"면서도, "지금 쓴 이 모자도 레드불 선수만 쓸 수 있다더라고요. 그런 데서 자부심도 좀 느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어느덧 강준이 선수는 레드불과 함께 세계 무대를 향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06
보드 밖에서 마주한 18살의 일상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케이터이지만, 스케이트 씬 밖의 강준이 선수는 18살 고등학생입니다. 여러 나라의 스케이트 파크를 누비다가도, 일상으로 복귀하면 여느 또래들과 다름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24시간 동안 보드를 타지 못한다면 무얼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애니메이션 보고, 요즘은 마인크래프트 게임도 자주 해요. 유튜브도 보고요. 보드 외에는 친구들이랑 만나서 밥 먹고 놀 때가 가장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치열한 세계 무대에서의 압박감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해소됩니다. 이처럼 보드 위에서의 긴장감을 내려놓는 시간은 강준이 선수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됩니다.
07
새로운 문화: 경쟁을 넘어 즐거움으로
강준이 선수가 전 세계의 다양한 스케이트 파크를 직접 경험하며 체감한 것은 ‘문화의 차이’였습니다. 그는 "미국은 모두가 즐기는 분위기인데, 한국은 아직 경쟁 중심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부모님들도 성적보다는 즐기는 문화를 더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고, 전체적으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짚었습니다. 결과와 성적에 매몰되는 엘리트 체육 방식에서 벗어나, 스케이팅 자체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문화가 국내에도 정착되기를 바라는 강준이 선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준이 선수가 그리는 새로운 움직임에 레드불 역시 동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서울 DDP 어울림광장에서 도심 속 '갭(Gap)'을 콘셉트로 다양한 스타일의 경기를 선보였던 ‘레드불 로드갭’에 이어, 올여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레드불 월라이드’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벽면을 타며 오직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임팩트를 선보이는 이 이벤트는, 강준이 선수가 지향하는 ‘경쟁을 넘어 함께 즐기는 문화’를 국내 씬에 제안하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08
다음 여정: 안전보다 임팩트
이제 강준이 선수의 시선은 다음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스케이터로서 다가오는 2026 아시안게임과 2028 LA 올림픽이라는 여정을 앞둔 그는 최근 무대를 주도할 라인 전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라인 구성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며, 파크 전체를 누비며 기술을 연결하는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반복 훈련을 소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훈련 방식은 정교해졌지만 경기 철학은 확고합니다. 큰 무대일수록 점수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식 대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확실한 트릭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입니다.
큰 대회에서 안전성과 임팩트 중 어디에 집중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안전보다는 임팩트에 더 집중한다. 결국 점수를 위해서는 도전해야 하고, 안전만 생각하면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안전한 순위 확보에 안주하기보다 단 하나의 확실한 임팩트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레드불 선수 강준이 선수가 앞으로 마주할 세계적인 무대들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