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타이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 현상들
사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굉장히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품이 없기 때문이죠. 엔진, 서스펜션, 차체, 바디워크…그리고 타이어까지. 자동차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부품은 달리기 위해, 그리고 안전하게 멈추기 위해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그리고 의외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부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타이어일 것입니다.
그럼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봅시다.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아마 그 대답은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바로 타이어입니다.
레이스카 엔지니어, 레이스카 디자이너들이 서스펜션을, 에어로다이나믹을, 그리고 패키징을 디자인을 하고, 레이스 직전까지 고민을 거듭하여 차량의 세팅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타이어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운포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게 왜 필요하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복잡한 과정을 통해 개발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 역시 타이어 때문이지요.
자동차의 기본 운동은 가속과 선회, 그리고 제동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은 타이어와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타이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포뮬러1에서도 타이어에 관한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게 다루곤 합니다. 타이어가 레이스에 미치는 영향이 커도 너무 크기 때문이지요. 단순하게 말해 엔진의 출력은 조금 부족해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타이어 그립이 다 떨어지는 순간…레이스에서 절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특히 몇 가지 특징적으로 일어나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보고되면, 드라이버는 물론이거니와 레이스 엔지니어들도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레이스 전략이 흔들리기 때문이지요.
타이어에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현상들은 레이스를 시청하다보면 가끔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들의 명칭과 원인 그리고 영향을 미리 알아두면 레이스를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타이어 디그라데이션(Tyre Degradation)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성능 저하’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몇 가지 현상들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여러가지 현상에 의해 나타나며, 마모에 의한 디그라데이션, 그레이닝(Graining)에 의한 디그라데이션, 그리고 열에 의한 디그라데이션으로 나뉩니다.
디그라데이션은 한마디로 타이어가 원래 성능의 한계를 벗어나면서 서서히 혹은 갑작스럽게 그립 수준이 떨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타이어는 구르기 시작하면서 형태가 일그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는데, 열은 타이어의 고무를 적당히 녹여 지면과 접지력을 늘이거나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타이어 표면에 포함된 고무는 마모가 진행되면서 언젠가는 다 녹아 없어지겠죠. 그러면 원래 성능이 발휘되지 않게 될 겁니다. 이 때 드라이버는 감각적으로 타이어 그립이 떨어짐을 감지할 것이고, 피트에서는 랩 타임의 저하 원인과 타이어 온도, 압력을 분석하여 교체 시기가 되었음을 간파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포뮬러1의 타이어 교체 과정이며, 디그라데이션은 타이어가 서서히, 혹은 급진적으로 성능을 잃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2. 타이어 그레이닝 (Tyre Graining)
타이어 그레이닝은 그레이닝이라는 단어에서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뭇결 무늬를 뜻하는 단어인데, 실제 타이어 표면이 나뭇결처럼 쓸려 나가는 현상을 뜻합니다. 주로 좌우 방향으로 쓸려 나가며, 이 현상은 차량이 코너링을 할 때 옆으로 밀리면서 일어납니다. 주로 노면 온도가 낮거나, 타이어 온도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고속 코너를 통과할 때 일어납니다. 온도에 의한 그립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이어에 전달되는 하중에 커짐에 따라 타이어가 코너 반대 방향으로 짓눌리며 미끄러지기 때문에 일어나는데, 그레이닝은 주로 프론트 타이어에서 일어나며, 간혹 드물게 리어 타이어에서 세로 방향으로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레이닝이 생기면 타이어 표면에 결을 남기게 되며, 이 결은 타이어 그립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원하는 각도로 코너를 돌 수 없게 만드는데, 시간이 지나 타이어 온도가 오르고, 마모가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지만, 사라질 때까지는 코너에서 원하는 반응을 얻을 수 없습니다.
3.타이어 블리스터링(Tyre Blistering)
블리스터링은 물집이라는 뜻으로, 타이어 표면 일부에 물집처럼 부풀어 오른 흔적들이 발견될 때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 현상은 타이어 표면 온도와 타이어 내부 온도의 차가 심할 때 생기는데, 특히 타이어의 사용 시간이 길며 스트레스가 심하게 전달되었을 때 타이어 내부 온도가 정상 범위를 넘어서 표면에 불필요한 열을 전달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때 표면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부풀어 오른 부분은 주행 중 충격이나 마찰로 터지며, 터진 부분은 그립을 일부 상실하게 되므로, 결국 타이어의 성능, 특히 코너에서의 타이어 성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보통은 리어 타이어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동력을 직접 지면에 전달하면서 동시에 코너에서 압력을 많이 받는 타이어이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쉽게 상승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물집이 터지면서 그립을 일시적으로 떨어드리게 되므로 굉장히 부정적인 현상으로 간주됩니다.
4. 타이어 딜레미네이션(Tyre Delamination)
딜레미네이션은 ‘박리’라는 뜻으로 타이어 표면이 벗겨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2013년 영국GP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서 일시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타이어는 스틸 혹은 케블라 구성된 벨트 위에 고무와 기타 혼합재를 섞어 접지면을 만드는데, 간혹 스틸벨트에 열이 심하게 전달되거나 혹은 결합 불량 및 기타 원인으로 인해 벨트위에 입혀놓은 고무가 떨어져나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당연히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겠지요.
5. 타이어 펑쳐(Tyre Puncture)
타이어 펑쳐는 쉽게 말해 ‘펑크’입니다. 간혹 블로우(Blow)라고 하여 터지는 현상도 있는데, 펑쳐는 타이어에 손상이 발생해 내부에 충전된 공기가 빠져나가 타이어의 형태가 일그러지는 현상을 말하며, 주로 배틀 과정에서 옆 차량과 가벼운 충돌을 겪은 후에 일어납니다. 간혹 서킷의 연석을 밟아서 손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슬로우 펑쳐라는 것도 있는데, 갑자기 공기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손상에 의해 서서히 공기압이 줄어드는 것을 뜻합니다.
6.타이어 플랫 스팟(Tyre Flat Spot)
플랫 스팟은 일정 부분이 평평하게 변하는 현상이라는 뜻으로, 주로 극심한 브레이킹으로 타이어가 잠기면서 미끄러질 때, 해당 접지면이 납작하게 갈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플랫 스팟이 일어나면 일단 그립이 균일하지 못하며, 마모가 진행될 때까지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서 주행 안정감이 떨어집니다.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현상으로 타이어 표면에 짙은 얼룩처럼 흔적이 보이기도 합니다.
7.타이어 마블(Tyre Marble)
타이어 마블은 타이어의 표면이 마모되면서 고무가 서로 엉겨있다가 주행하는 도중 떨어져나가는 작은 찌꺼기들을 뜻합니다. 주로 고속의 직선이나 코너에서 발견되며, 코너의 입구에 쌓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레이스를 마친 포뮬러1카들을 보면 간혹 차체 아래부분에 검은 반점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반점들은 모두 타이어 마블이 튕겨져 나와 차체에 부딪히며 남긴 흔적으로, 마블은 레이스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레코드 라인 좌우로 쌓여갑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나, 간혹 레코드 라인을 벗어날 때, 타이어 표면에 잔뜩 달라붙어 그립을 떨어뜨리고, 진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타이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더 있으나, 주로 언급되고, 또 가장 많은 손실을 일으키는 현상들은 이 정도입니다.
다소 어렵고 또 복잡하며, 용어들도 외우기 힘들지만, TV중계를 보다 보면, 자주 언급되는 단어들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타이어 성능을 저하시키는 원인들은 해당 레이스에서 선수들의 랩 타임과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가량 Seb이 피트월과 교신을 하는 도중 ‘프론트 타이어 블리스터링이 발견되었음’이라고 한다면, ‘몇 랩 가량 랩 타임이 조금 떨어질 수 있으며, 잠시 후에는 타이어를 교체하겠구나’라는 것을 미리 예측할 수 있죠.
레이스를 조금 더 즐겁게 관람하기 위해서는 다소 복잡하지만 몇 가지 용어와 현상들을 알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